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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칼럼 :: '든 사람'과 '된 사람'
   
▲ 선문대학교 언론광고학부 김진웅 교수

  가을은 떠남의 계절인가보다. 불타는 듯한 단풍은 사람들로 하여금 길을 나서지 않을 수 없게 유혹한다. 길마다 산마다 행락객들로 넘실댄다. 때를 놓치면 볼 수 없기에 서로서로 경쟁적으로 앞다투어 달려간다. 단풍 앞에 서면 모두는 해묵은 나이를 잊고 동심으로 돌아가곤 한다.
가을이면 대학 캠퍼스도 나무마다 형형색색의 불꽃이 타는 듯하다. 무심코 강의실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면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하지만 곧 마음 한구석에는 쓸쓸함이 동반되곤 한다.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움은 제한적 시간성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리라. 그렇다. 캠퍼스의 가을은 떠남과 헤어짐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4년 이라는 시간이 흐르면 떠나가야 한다. 청춘과 낭만이 넘치는 캠퍼스를 등지고, 경쟁과 생존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곳, 사회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이른바 ‘된사람’보다는 ‘든사람’을 선호한다. ‘든사람’은 특정 전문지식을 갖춘 자이다. 이는 마치 거대한 기계에 필요한 부속품처럼 기능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새로운 부품은 늘 낡은 부품을 대체하기 위한 쓰임의 가치만을 요구받는다. 사회는 인격적 주체로서 ‘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 대상으로서 ‘그것’을 요구한다. 현대사회는 사물화(事物化)된 인간들의 공동체이다. 고유한 ‘나’를 대체하는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하나의 부속품 내지 상품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회적 존재로서 ‘나’는 언제나 다른 사람, 타자로 대체될 수 있다. 즉 나는 더 이상 절대적 존재가 아닌 상대적 존재일 뿐이다. 시장 진열대의 물건처럼 던져진 존재에 불과하다. 개개인은 더 이상 삶을 스스로 영위할 수 없는 존재이다. ‘나’라는 존재는 사회에서는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된다. 다정했던 친구들은 서로 서로 경쟁자로 변한다. 너의 존재는 곧 나의 배제를 뜻한다. 그렇다고 어느 누구도 주체적 존재가 되지는 못한다. 다만 선택받은 일회용 상품이 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경주할 뿐이다. 캠퍼스 밖, 그곳은 이것이 곧 삶인 세상이다. 얄팍한 앎이 고유한 삶을 대체하고 지배하는 사회는 인간상실의 현장이다. ‘된사람’보다는 알량한 지식을 갖춘 ‘든사람’을 요구한다.
‘든사람’을 선호하는 시대는 필연적으로 배제된 다수를 양산한다. 모두가 ‘된사람’이 될 수 있으나, ‘든사람’이 될 수는 없다. 인격적 존재인 ‘된사람’은 절대적 개념인 반면, 물격(物格)적 존재인 ‘든사람’은 상대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든사람’은 사회적 존재이고, ‘된사람’은 자연적 존재이다. 사회적 존재로서 나는 언제든지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는 반면, 자연적 존재로서 나의 삶은 어느 누구로도 대체될 수 없는 유일무이하고 절대적인 것이다.
고로 각자는 절대적 존재로서 ‘된사람’을 지향해야 마땅하다. 아무리 사회가 ‘든사람’을 요구한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렇지 못하면 늘 원심력에 휘둘려 끝없이 경쟁, 불안, 소외, 배제 등에 시달릴 수 있다. 가을은 이런 ‘돤사람’으로 성숙해지기 좋은 시간이다. 독서와 사색은 ‘된사람’으로 인도하는 길이다. 가을이 끝나기 전에 잠시나마 느릿느릿 캠퍼스를 거닐어 보자.

김진웅 교수  jiwoo@sunmo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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