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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아시안게임 :: 아시안게임의 키다리아저씨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이 약 20여 일 다가왔다. 인천아시안게임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 이어 한국에서 세 번째로 개최되는 아시안게임이기 때문에 기대치가 높다.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은 초반 주 경기장 설립문제부터 삐걱거리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가뜩이나 엄청난 부채로 인한 재정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인천시이다. 그 때문에 과연 인천아시안게임이 제대로 열릴 수 있을까 하는 주변의 우려도 컸다. 아시안게임을 반납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었지만 12일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성화 채화식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인천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이하 인천 아시안게임 조직위)는 아시안게임에 부족한 인력난을 자원봉사자로 대체하기 위해 시민들을 대상으로 통역부터 미디어 분야까지 여러방면에 걸쳐 모집해왔다. 많은 지원자들 중 면접 등의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총 1만 7천여 명이 뽑혔고 지난 19일 자원봉사자 발대식까지 끝마쳤다.

   
▲ 인천아시아게임 자원봉사자 발대식 (출처: 인천아시안게임 공식 트위터)

인천아시안게임의 자원봉사자 지원자로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모집 1월까지, 2만 5,827명이 접수했다. 무려 접수율이 191.3%이나 된다. 다른 봉사활동과는 다르게 인천아시안게임 서포터즈에 뜨거운 반응을 보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우선 인천아시안게임 자원봉사자에 지원한 연령별로는 16세~29세가 70.9%로 가장 높았고, 60대 이상이12% 정도 되었다. 지역별로는 역시나 인천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답게, 인천 거주자들이 50.4%로 가장 많았으며 경기 26%, 서울 16.7% 순으로 나타났다. 10대 후반과 20대, 즉 학생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을 보아, 역시 스펙 때문이 아니냐는 의견이 많기도 했다. 하지만 스펙때문이라면 상대적으로 힘든 인천아시안게임을 대신해 다음 봉사활동에 지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작년 열린 인천 실내&무도 아시안게임 이어 인천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인천대학교에 다니는 A 학생에게 왜 아시안게임 자원봉사를 지원하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는데, "사실 무도대회 때 자원봉사를 하면서 조금 힘들었었다. 다른 봉사활동과 비교하여 벅찼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인천 아시안게임이 재정난 때문에 많은 위기를 겪었고 언론을 통해서도 아시안게임 위기에 관하며 많이 접했다. 과연 내 고장 인천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하다가 이렇게 무도대회에 이어 아시안게임에도 참가하게 되었다.”라고 자원봉사 참가 소감을 밝혔다. 이처럼 스펙이 아닌 오로지 인천아시안게임을 위한 사명감을 가지고 발벗고 나선 청년들이 많다. 그 뿐만 아니라 인천아시안게임 자원봉사자 지원자 중에는 눈에 띄는 점이 또 하나 있다. 60대 이상도 12%라는 큰 수를 차지하고 있다. 자원봉사 신청자 중 최고령인 91세 이연수 옹의 경우 "황혼길인 만큼 봉사를 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던 차에 나이는 상관이 없다고 하길래 구청에 신청을 했죠. 내가 사는 인천에서 열리는 행사인데 당연히 참여해야 하지 않겠어요."라며 자원봉사 참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인천에서 이런 큰 축제가 열리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물론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우리나라의 조별예선을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아시안게임의 경우, 인천 아시안게임 조직위가 주체가 돼서 하는 범아시아 적인 축제다. 그래서 인천시에게도 월드컵 때 와는 차원이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천에 오는 낯선 이방인에게 긍정적인 이미지의 인천, 그리고 대한민국을 선사하기 위해 삼만에 가까운 지원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 아닐까.

   
▲ 2002 부산아시안게임 (출처 : 부산 체육시설관리사이트)

 그렇다면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은 어땠을까. 부산아시안게임의 경우, 한•일 월드컵 바로 직후에 열려 국민의 높은 관심을 받는 만큼, 부담치가 매우 컸다. 이러한 부담감은 부산시민에게 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였다. ‘부산시민 서포터즈’라 이름 붙여진 자원봉사자는, 부산아시안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민간 외교사절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다. ‘부산시민 서포터즈’의 맹활약으로 부산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성공적으로 끝난 부산아시안게임은 지금의 부산을 국제도시로 만드는데 한몫을 하기도 했다.

   
▲ 인천아시안게임의 키다리아저씨, 자원봉사자 (출처 : 인천아시안게임 공식 트위터)

4년을 준비한 45억 아시아인의 축제가 정말 코앞으로 다가왔다. 인천 아시안게임 조직위가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데에 가장 문제가 되었던 주 경기장은, 우여곡절 끝에 7년 만에 완공이 되었고, 이제 개막식까지 모든 준비가 완료됐다. 하지만 인천시가 아시안게임을 치르고 갚아야 할 돈은 자그마치 1조 200억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이다. 인천시의 긴박하고 절박한 상황은 인천시민을 넘어서 다른 지역에 사는 이들까지 자원봉사라는 이름으로 똘똘 뭉치게 만든 이유가 되었다. 아시아가 우정과 화합을 통하여 인류 평화를 추구하고 하나 된 아시아를 만들자는 ‘평화의 숨결, 아시아의 미래’ 이 인천아시안게임의 슬로건이다. 인천아시안게임의 주역이 될 자원봉사자들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아시아의 화합을 만들어 낼지 기대된다.

이민아 기자  twominki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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