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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수의 세상읽기 :: 숨겨진 영웅 그의 이름은 박지성

   
 
2014년 5월 24일 경남과 PSV의 마지막 경기가 시작 되었다. 등번호 33번 에인트 호벤의 레전드 박지성의 경기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박지성은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멤버이기도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한 주축으로서 아시아의 축구가 유럽에 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소 몸으로 증명하며 세계의 정상들이 모여있는 EPL(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약자)에서 최고 수준의 기량을 펼치며 팀의 우승에 활약했었다. 그런데 어떻게 아시아의 선수가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겠는가? 많은 사람들은 그를 천재라고 부른다. 하지만 과연 그는 천재였을까?

박지성이란 이름을 알리기까지 그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박지성이 평발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가 '평발'이기 때문에 수원공고 졸업 이후 대학팀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지 않다. 게다가 그는 국내 리그인 K리그에서 출전한 것이 아닌 건너편 일본의 J리그에서 첫 경기를 펼치게 되었다.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이지만 박지성을 키워준 곳은 국내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많이 묻어났다.

바로 그가 축구의 꿈을 생각하기 시작한 안용중학교 근처의 가까운 축구팀과 지역은 수원으로 경남과의 경기 이전에 국내에서벌인 첫 경기가 수원삼성블루윙즈와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그리고 그가 은퇴할 시기가 되어서야 그는 진정으로 수원의 '아들'로 불리게 되었다. 그가 수원의 명예선수 7번을 받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자랑스러워했을지 몰라도 필자는 박지성 선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은퇴할 때가 되어서야 국내에서 울려퍼지는 '위송빠레'는 슬픔이 묻어나 있었다.

박지성은 흔히 메시와 호날두 같은 선수들과는 분명 차이가 있는 선수이다. 왜냐하면 박지성은 '천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천재라고 불리는 호날두와 그라운드를 밟았다. 단지 그들과 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성실함'과 '노력'이었다. 그의 이야기가 단지 축구에만 적용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연 우리들은 최악의 상황이 들이닥쳐 있을 때 상황만을 탓하고 있지는 않을까? 아니면 천부적인 재능이 없다고 자신을 탓하고만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끊임없이 노력하라. 그대가 천재는 아닐지라도, 설령 빛나지는 않을지라도 당신은 영웅이다.

 

   
 

최영수 칼럼니스트  fpwhem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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