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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칼럼] "당신은 왜 공부하시나요?"

   
▲ 선문대학교 언론광고학부 하종원 교수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로드 스쿨러'(Road Schooler)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여행을 다니며 길 위에서 세상과 인생을 배우는 젊은이들의 삶이 담겨 있었습니다. 한 소녀는 홀로 인도, 티베트, 네팔 등 8개국을 다녀온 후 다큐멘터리 감독을 준비하고 있으며, 자전거로 전국을 여행하면서 익힌 요리 실력 덕분에 주방장이 된 청년도 있었습니다. '학교'라는 안전한 울타리를 떨쳐버리고 거친 세상 속으로 들어간 그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이 학교이고, 삶 그 자체가 교과서"라고 말입니다. 그들의 당당하고 거침없는 발언에 감동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적지 않은 세월을 '제도권'의 선생으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그들의 선택을 그저 옳다고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공부를 할까요. 무엇 때문에 학교에 다닐까요. 당연히 배우기 위해서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배우고, 배워서 무엇을 하려 할까요. 역시 당연하게도 지식을 습득하려는 것이며, 그것을 토대로 직업을 갖고 사회생활을 할 목적일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분명 정답입니다. 그런데도 뭔가 2% 부족하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길 위에서 자신들의 삶을 찾으려 했던 그 로드 스쿨러들은 학교에서는 이런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그들은 자신들이 만난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소중한 배움을 얻게 되었으며 그것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데 중요한 열쇠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과연 그들이 말한 '배움'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명확하게 그 의미가 잡혀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렴풋이 떠오른 것은 그들이 '나눔'의 가치를 깨달았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뻔한 말이겠지만 그것은 더불어 살아간다는 뜻일 것입니다. 나와 맞는 존재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존재, 나와 다른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에 대한 인정과 수용입니다. 다양한 존재들의 평화로운 공존을 거북살스러워 하지 않는 마음, 그것이 바로 흔히들 말하는 더불어 사는 것의 출발점이라고 봅니다.

여기에 하나 더 붙이자면 즐거움의 '공유'라고 봅니다. 계량적인 수치로 서열화된 '직업'이 아닌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그것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그것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삶의 방식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 개의 행복방정식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택한 길을 후회하지 않고 꿈을 향해 땀을 흘리며 그것을 즐기는 자신감이 로드 스쿨러들에게서 느껴졌던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내가 서 있는 지점에서 그러한 느낌을 받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취업사관학교'라는 도발적인 용어로 자신들을 홍보하는 대학도 있을 만큼 대학의 의미와 역할은 변하고 있습니다. 적자생존의 경쟁논리 속으로 모든 가치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마저 때론 느껴집니다. '상아탑' 운운하며 대학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거론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이거나 세상물정 모르는 이상주의자의 푸념으로 취급 받을 정도입니다. 물론 세상의 변화에 부응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것은 원칙으로서의 기본이며,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기본이 지켜져야 진정 변화의 의미가 살아날 수 있을 것입니다.

청춘의 20대.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 애쓰는 시기입니다. 많은 시행착오와 치열한 고민 속에서 자신을 단련하는 시기입니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거울 속에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을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고 있는 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왜 공부하시나요?" 그리고 부끄러움을 떨치지 못한 채 스스로 다시 자문합니다. "난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하종원 교수  won@sunmo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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