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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앞에 우물쭈물 하는 그대에게 :: 사랑의 역사

   
 
사랑은 점과 같다. 원인과 결과, 어떤 일로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면서 차곡차곡 세월의 획을 그어가는 역사의 굵직한 선과는 다르다. 그와 그녀의 첫 만남은 짧고 강렬하게, 그와 그녀의 다툼은 낙서처럼 무작정, 그와 그녀의 데이트는 달콤하게 색색의 점을 찍으며 나아간다. 인과관계도 없고, 승자와 패자도 없는, 좋아하기 때문에 시작한 알 수 없는 미래일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점점이 찍힌 것들은 훗날, 누군가에겐 '결혼'이라는 눈부신 명작이 되는가하면, 몇 개의 점이 부족해서 모나리자처럼 아쉬운 미완의 작품, 또 다른 누군가에겐 다시는 생각하기도 싫은 낙서쯤으로 남아 빛바래간다. 나는 알랭 드 보통의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으며 담담하게 사랑을 흘끔대다가, 가끔은 <하고 싶다, 연애>와 같은 실질적 연애 지침서를 읽으며 한숨 가득 '사랑'의 겉면을 훑기도 했다. 사랑은 책마다 작가마다 다르게 그려져 있었다. 누군가는 사랑을 미친 짓이라 했고, 누구는 천국의 종소리를 듣는 것과 같다고 했으며 어느 누군가는 그저 번식 본능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도대체 사랑이란 무엇일까. 날 좋은 봄날, 벚꽃 길을 함께 걸어갈 누군가가 없음에 속상해하고, 스타카토처럼 문득 문득 튀어 오르는 옛사랑의 점 때문에 아찔했던 기억이 나를 이 책으로 이끌었다.

이 책은 "사랑이란 그 사람만 보이고 다른 것은 모두 배경으로 물러가는 것"이라는 <오만과 편견>의 명대사와 함께 시작된다. 소주제는 첫사랑을 시작으로 사랑과 열정, 성장, 이별, 도덕, 결혼을 차분히 밟아가며 사랑의 단계를 그려내는 동시에 다양한 책 속에 나타난 사랑의 천의 얼굴을 담아냈다. 첫 부분에서는 황순원 작가의<소나기>로 어린 소년과 소녀의 풋풋하고 순수한 첫사랑이 살그머니 펼쳐진다. 요즘 유행가에서 흥얼대는 원색적이고 일회적 사랑이 아닌 "이 바보"와 함께 날아든 하얀 조약돌이 주는 암묵적 사랑의 언어가 내심 감미롭다. 그리고 그 감미로움 사이사이 반짝여 오는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첫사랑의 원형은 괜시리 가슴을 뛰게 한다. 황순원의<소나기>에서 보여지던 첫사랑의 원형은 박완서 <그 남자네 집>, 베르코르의 <바다의 침묵>으로 이어지며 '가슴 아픈', '저만치 떨어져 있어야만 했던', '한 장의 그림으로 남았던' 색색의 사랑으로 빛깔을 바꾸며 다양한 사랑의 면모를 드러낸다.

   
 
많은 이들이 사랑을 하고, 사랑을 갈구하며, 사랑 때문에 아파하기도 한다. 사랑은 우리 삶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것이며, 한평생 스며드는 것이지만 많은 이들이 사랑 앞에 주저하고 주변머리만 맴돌다 돌아선다. 혹은 아주 쉽게 사랑과 이별을 맺고 끊으며 그것을 사랑이라 칭한다. 잘 생각해보면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았었나 싶다. ‘사랑’이 뭔지도 모른 채 어영부영 발을 디뎠고, 사랑은 달콤한 것이라고만 생각해서 조금만 쓰다싶음 사랑의 유효기간을 들먹이며 돌아섰다. 나에게 ‘사랑’이란 드라마 속에서나 나올 법한 환상 그 즈음에 자리한 사탕처럼 달콤하고 꿈처럼 로맨틱한 무언가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수많은 사랑의 조각 위를 거닐고 나니 ‘사랑’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다. ‘사랑받지 못한 것은 불운에 지나지 않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건 불행이다.’란 말처럼 사랑은 수동태가 아니라 능동태일 때 더 빛이 나는 법이며, 사랑은 실제로 행할 때 비로소 이뤄지는 동사형 마법인 동시에 책임이 동반되는 서로간의 약속이라는 것을 말이다. 

<사랑의 역사> 명대사
사랑을 하면 달랑 몸만 오는 게 아니다. 국가와 민족과 기후가 따라오고 정체성이 따라온다. 그들은 정체성이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었다. 그래서 둘은 첫 눈에 반했지만 도파민이 사라진 후에 보니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는 두개의 선이 교차점에서 짧게 만난 것일 뿐이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한동안 합치된 것은 넓고 갈림길이 많은 복잡한 길 위에서 일어난 우연한 사건이었다. -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김수현 기자  drua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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