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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s Place, 교토를 떠나며”

‘Time’s Place’ 1,200년의 고도(古都), 교토의 별칭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절묘하게 결합한 멋진 이름입니다. 우리말로 어떻게 옮길 수 있을까요. 단순 직역하면 ‘시간의 장소’ 이지만 다소 도식적인 느낌이 듭니다. 약간 멋을 부려 ‘시간이 머무는 곳’ 혹은 ‘시간이 흐르는 곳’ 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수많은 절과 유적지가 말해주는 과거가 있고, 수퍼 마리오와 포켓몬의 닌텐도 본사가 있는 현재가 공존하니까요. 그런 교토에서의 나의 시간이 저물고 있습니다.

 

[사진 : 東本源寺에서 본 Kyoto Tower]

낯선 곳에서의 삶은 쉽지 않습니다. 뚜렷한 목적과 신분이 보장되지 않은 이방인으로서의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때론 물 위의 기름처럼 부유한다(floating)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에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좀 더 찬찬히 바라보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들의 삶을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물론 6개월이란 턱없이 짧은 시간에 교토를 보고 일본을 안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만.

 

사물을 좁은 소견과 주관으로 잘못 판단함을 일러 흔히 ‘소경 코끼리 만지기’(群盲撫象)라고 합니다. 단편적인 경험으로 전체를 안다고 착각하는 어리석음을 일컫는 것이라 하겠죠. 그런데 달리 보면 앞을 못 보는 이들도 여러 명이 코끼리를 만지고 각자가 느낀 것을 나누고 정리하면 얼추 그 전체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교토통신’도 코끼리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묘사일 수 있다는 생각에 나름 의미를 부여해 봅니다.

 

처음 ‘교토통신’을 시작한 것은 적적하고 무료할 수밖에 없는 타지 생활을 조금은 활기 있게 보내자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여러분들과 소통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때론 여러분에게 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때론 여러분 앞에서 직접 이야기 하는 마음으로 적어 보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친구들에게 다가갔는지는 모르지만 누군가에겐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고 믿기에 즐겁게 이어간 것 같습니다.

 

[사진 : 옛 간판과 건물을 보존하여 현재의 것과 같이 내건 교토 도심의 점포들]

일본에서 지내면서 여러 얼굴들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레미제라블>의 저자, 빅토르 위고의 고향론(故鄕論)은 이런 감상주의에 경종을 울립니다. “고향을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은 아직 미숙하다. 모든 곳을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강하다. 그러나 전 세계를 타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 고향에 빗대어 편견과 고정관념을 벗어난 보편적 세계시민으로서 큰 인식의 틀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터이지만, 미숙한 사람으로 분류된다 해도 별로 부인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분명 고향은 그리운 곳이니까요.

 

예전에 이제하(李祭夏)의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라는 단편소설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줄거리는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제목만큼은 또렷이 머리에 남아 있습니다. 처음 접했을 때나 지금이나 참 먹먹한 느낌이 듭니다. 길 위에서도 쉬지 못하고 끊임없이 정처 없이 떠돌아야만 하는 나그네의 안타까운 숙명에 가슴이 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럴 수 없는 여정이라면 과연 쉽게 떠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교토를 떠나 집으로 돌아갑니다. 다시 예전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겠죠. 하지만 초행길에 건넜던 어떤 다리가 돌아올 때는 그 전의 다리가 아니듯 이곳에서 지내면서 오기 전과는 달라졌다고 봅니다. 짧지만 보고 느끼며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공부”라는 말처럼 또 하나의 공부를 한 셈입니다. 이제 6개월의 공부가 끝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여러분과 함께 새로운 공부를 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설레는 마음으로 여러분과의 재회를 고대합니다. 곧 다가오는 설 잘 보내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납시다. 그동안 함께 해주어 고맙습니다. 이제 ‘교토통신’을 마감합니다. *

 

 

 

 

하종원 교수님  won@sunmo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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