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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새해맞이와 기원

다시 또 새해가 밝았습니다. 늘 그렇지만 보내는 해는 ‘다사다난(多事多難)’ 했고, 새로 맞는 해는 ‘희망찬’으로 시작합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그 중에는 힘들고 맘 아픈 것들도 있기 마련이고, 그러기에 새로 시작하는 해에는 좀 더 좋은 일이 많기를 기대하기 때문이겠죠. 한국에는 예전에 ‘구정(舊正)’이었다가 지금은 ‘설날’로 정착된 민족 명절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날을 기점으로 한 해를 마감하고 출발하는 정서가 강합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신정(新正)만 치루기 때문에 양력 1월 1일을 맞는 마음이 우리보다 각별한 듯합니다.

 

한 해를 맞는 일본인의 행사는 그전에 한 해를 보내는 의식인 망년회(忘年會)로부터 시작합니다. 연말이 되기 한참 전인 10월경부터 이미 여러 음식점이나 주점들은 대대적으로 예약 공지- 미리 하면 할인해준다는 미끼와 함께 - 를 합니다. 이곳 지인의 말에 따르면, 다양한 인간관계에 얽힌 모임마다 자리를 갖다보니 연말에는 수차례 망년회를 치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사회적 존재의 의미를 말해주는 것이기에 일본에서 망년회는 중요한 의례(儀禮)로 자리 잡은 듯합니다.

 

[사진: 한 주점의 망년회 유치 광고문]

망년회가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감회를 다분히 즐겁게 먹고 마시며 푸는 밤의 잔치라면, 새해를 맞는 신년회(新年會)는 한 해의 운을 기원하는 차분한 낮의 의식입니다. 망년회를 준비하는 음식점과 주점이 그렇듯이, 절이나 신사(神社) 역시 신년회를 맞이하여 매우 분주합니다. 불경스러운 표현일지 모르지만 ‘대목’을 맞은 상점과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평소에도 많은 이들이 찾지만 신년초의 절이나 신사는 복을 기원하고 시주를 하는 일본인들로 장사진을 이룹니다.

 

그들이 가장 많이 바라는 것은 역시 재물, 건강, 좋은 짝, 그리고 학업과 관련된 기원입니다. 하지만 죽은 후 천당에 가고 싶다는 바람은 별로 없습니다. 일본에서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이 아니라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의 크리스트교(가톨릭과 개신교 망라) 신자는 한국에 비해 상당히 적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표현이 낯설다는 일본인도 있을 정도이니까요. 종교와 무관하게 일상적으로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우리와 다른 면이라 하겠습니다. 이렇듯 일본에서 크리스트교가 그리 강세를 보이지 않는 배경에는 일본인들의 현세적 사고와 현실적인 욕망이 자리 합니다.

 

[사진: 교토 헤이안신궁(平安神宮)의 신년 참배객]

그러한 일본인의 인식은 그들의 험악한 자연환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가깝게는 약 15,000명 이상의 인명피해를 낳은 2011년의 동일본 쓰나미를 비롯하여 지진, 홍수, 화산 등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 늘 그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과 직면하여 살아가는 일본인들의 의식은 당연히 우리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우리가 전쟁과 분단이라는 집단적 기억을 알게 모르게 갖고 있듯이 일본인들에게는 자연재해에 대한 공포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공통적으로 내면화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 있을 때 잘 살기를 바라며, 또 아무리 큰 고난이 닥치더라도 반드시 이겨내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식이 강합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가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隠し, 2002)이 일본 영화 사상 가장 많은 흥행수입(약 3천 5백억 원)을 기록할 수 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인간 세계(人界)에서 철부지였던 ‘치히로’(千尋)가 유령의 세계(幽界)로 빠지게 되어 부모는 돼지로 변해버리고 본인도 이름이 ‘심’(尋)이 떨어져 ‘센’(千)으로 바뀌어 언제 그것마저 없어질지 모르는 위기를 맞지만, 절망하지 않고 버티고 이겨내어 결국 부모를 찾고 다시 인간세계로 나오는 이야기는 남녀노소를 막론한 일본인들의 심금을 울렸으며, 그것은 바로 그들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포스터]

사후에 천당이나 극락을 갈 수 있을지, 혹은 다시 이 땅에 환생할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순간, 이 자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황금’보다도, ‘소금’보다도 더 귀한 것이 바로 ‘지금’이라는 우스갯말처럼. 그렇다고 ‘지금’을 의미 있게 생각하는 것이 단지 현실의 욕망을 충족하고 순간을 즐기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한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시간이기에, 수동적으로 끌려가지 말고 당당히 주인이 되라는 뜻일 것입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에서 키팅 선생이 박제화된 상류층 학생들에게 설파했던 ‘Carpe Diem’(Seize the Day)처럼 말입니다.

 

사실 새해가 되었다고 새삼스럽게 크게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다지고 어떤 식으로든 변화하려는 의지를 갖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고(故) 신영복 선생은 ‘자유(自由)’란 ‘자기(自己)의 이유(理由)’의 준말이라고 하였습니다.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는, 자기 스스로의 독자적인 존재의 이유를 가질 때 진정 자유로워 질 수 있으며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으로 여겨집니다. 새로 밝은 해, 여러분 각자의 ‘자기의 이유’에 대해 고민하고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하종원 교수님  won@sunmo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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