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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자전거 생활학

자전거를 처음 탔을 때가 기억나십니까. “따르릉 비켜나세요”가 아닌 두 바퀴로 가는 자전거 말입니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두발자전거를 배웠습니다. 세상에 이런 것이 있나 싶었습니다. 걸어서 한참 걸리는 곳을 '금방’ 갈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도구를 통해 육체적 능력의 확장(extension)을 도모하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에 대해 어렴풋이 깨달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그 후 고등학교 때까지 틈나는 대로 자전거를 타고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어디에 가든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마치 내 편이 하나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면서 자전거 타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더니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전거 안장에 올라가는 일이 드물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자동차라는 강력한 대체재가 등장한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 몇 년 전 학교 교직원 체육대회에서 - 생애 최초로 - 경품 추첨으로 받은 자전거는 연구실 한 구석에 미안할 정도로 방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던 내가 교토에 와서 매일 자전거를 타고 있습니다. 이곳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자전거는 중국 학생이 귀국하면서 내놓은 것을 구입하고 빨간 색이라 ‘적토(赤免)’라고 이름을 붙여 줬습니다. 적토는 전차역까지 걸어가야 하는 길을 손쉽게 갈 수 있게 해주는 편리한 ‘발’이 되어 주고, 마트에서 산 먹거리를 앞 바구니에 싣고 편하게 올 수 있으니 또 긴요한 ‘손’이 되어 주었습니다. 삼국지에서 여포와 관우가 탔다는 진짜 적토마(赤免馬)까지는 아니더라도 학교 가는 것도, 장을 보는 것도, 혹은 때로 나들이 할 때도 큰 도움이 됩니다.

 

[사진: 애마 ‘적토’(赤免)]

이렇듯 이곳 사람들에게 자전거는 일상입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많은 이들이 자전거를 탑니다. 주말의 한강 고수부지는 자전거족들로 만원을 이루며, 자전거 길로 전국 일주를 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그것은 여가생활을 즐기는 레저 활동에 가깝습니다. 고단한 일상으로 부터 벗어나 머리를 식히고 재충전하는 '의식'(儀式)입니다. 그러나 일본인에게는 멋진 헬멧과 화려한 옷, 그리고 첨단의 자전거가 필요 없는, 그저 생활방편의 하나입니다.

 

이들의 자전거 생활을 접하면서 가장 경이로웠던 것은 70대 전후 할머니들의 절묘한 자전거 실력입니다. 우리나라 시골 할아버지들의 '정중동'(靜中動)식 자전거 타기에 감탄한 적이 있었는데, 일본에서는 할머니들이 그런 장면을 연출합니다. 곳곳이 몸을 세우고 직각으로 손잡이를 잡고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발로는 페달을 밟습니다. 상반신만 보면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 듯한데 구름이 흐르듯 미끄러지면서 천천히 움직입니다. 할머니들의 그런 뛰어난 솜씨는 바로 어릴 적부터 자전거와 생활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자전거란 오랫동안 신어 왔던 '신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전거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 또 다른 예는 엄마들입니다. 자전거의 뒷좌석(별도의 앉는 장치를 설치하고)에 유아(6세 미만)를 태우고 다니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어떤 때는 앞뒤로 두 명도 태우는 진풍경을 보입니다(종전에는 금했는데 2009년 법을 개정하여 안전기준을 충족한 자전거에 한해 유아 2명을 태울 수 있게 허용). 또 택배도 자전거로 이루어집니다. 자전거 뒤에 커다란 카트를 매달고 각 배송처로 운반을 합니다. 꽤 힘들 텐데 라고 생각 했는데 의외로 여성들이 많이 일하고 있습니다.

 

[사진: 일본의 택배 배달 자전거]

하지만 자전거의 생활화에 비해 의외로 일본의 도로 여건은 자전거 주행에 편하지 않습니다. 전용도로가 별로 많지 않아 대체로 차도의 갓길이나 인도에서 타야 합니다. 아무래도 차도는 위험부담이 있어 주로 인도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사람들이 오가는 와중에 차질 없이 타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인도가 별로 넓지 않아 두 세 사람이 옆으로 걸어가면 꽉 찰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큰 무리 없이 사람과 자전거가 공존합니다. 마치 그들만의 불문율이 있듯 묘하게 조화를 이룹니다.

 

이를테면, 대부분의 행인들은 좁은 길이라도 가능한 왼쪽으로 치우쳐 다니고 - 물론 그 중에는 중도파(中道派)가 없지는 않습니다만 - 그를 피해 자전거는 오른쪽으로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이곳에 와서 길을 걷다가 따르릉 경종 없이 어느새 오른쪽으로 자전거가 스쳐 지나가 뒤늦게 섬뜩한 적도 많습니다. 자전거끼리 맞붙었을 때는 각자 왼쪽으로 지나치며 충돌을 피합니다. 처음에는 이 문화가 익숙지 못해 허둥대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제법 여유 있게 운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자전거가 생활화되어 있다 보니 그에 맞는 관리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일단 모든 자전거는 정식으로 등록을 해야 합니다. 치안 상의 이유도 있고, 분실했을 때 쉽게 찾을 수 있기 위해서 라고도 합니다. 또한 정해지지 않은 곳에 두면 수거해 가기 때문에 마트나 음식점, 편의점, 거리 등 곳곳에 자전거 주차장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내가 전차를 타는 무카이지마(向島)역 좌우에는 2층 건물의 대형 자전거 주차장(駐輪場)이 있습니다(월 주차료 2,500엔). 정작 자동차 주차장은 별도로 없습니다.

 

[사진: 전차역의 자전거 주차장]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아무리 조심해도 사고는 나는 법인지라 일전에 자전거와 행인이 부딪치는 큰 사고가 났습니다. 그 이후로 논의를 거쳐 2018년 4월부터 자전거 보험이 의무화되었습니다. 여기저기 홍보 고지와 함께 보험회사들의 광고도 게시되었습니다. 내년에 교토에 왔더라면 꼼짝없이 자전거 보험마저 들어야 할 판이었습니다(참고로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건강보험료를 매달 꼬박꼬박 내고 있습니다).

 

사실 자전거는 첨단의 기기가 아닙니다. 동력의 원천이 페달을 돌리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어찌 보면 근대 발명품 중 가장 원시적인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선진국보다 개발도상국에서 더 많이 사용되는 것도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발전된 선진국의 하나인 일본에서 자전거가 중요한 사회적 기반이 된다는 사실은 매우 의외입니다. 왜 그럴까요? 비싼 교통비와 주차료를 절약하기 위한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이며, 도로가 좁아 자전거가 효율적인 수단이 되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친환경 교통수단이라는 점에서 국가가 정책적으로 장려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전거가 소수자(minority)의 도구라는 점에 있다고 봅니다. 일본에서 자전거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층은 청소년, 여성, 그리고 노년층입니다. 또 상류층보다는 중하류층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그들은 경제적 이유이든 사회적 조건 때문이든 자신들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 그것을 오랫동안 이용하면서 삶의 한 방식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첨단의 시대에도 큰 변화를 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유는? 그리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겠죠. 뻔쩍거리는 자동차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이 초라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외양보다는 내실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기에 그 흐름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자동차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우리와 비교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내버려 두었던 자전거를 깨끗이 닦고 어린 시절의 마음으로 되돌아가 다시 친해지려고 합니다. 레저가 아닌 생활 속에서 재발견해보고 싶습니다. 기회가 되면 함께 자전거를 타 봅시다.

 

 

하종원 교수님  won@sunmo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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