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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수락하되 절망에 투항하지 않는”

지난 10월말 일본 전역을 경악케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아이스박스에 담긴 9개의 절단된 두부(頭部)가 도쿄 부근의 한 원룸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거리낌 없이 여러 구의 사체들과 함께 지냈다는 사실은 엽기적인 살인사건을 종종 접했던 일본인들에게도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온 듯합니다. 신문과 텔레비전은 연일 용의자의 배경과 범행동기를 탐색하며 사건을 보도했습니다. 용의자로 잡힌 27세의 젊은 청년의 모습이 공개되었고 학창 시절의 사진과 그동안의 삶의 이력도 곁들여졌습니다. 평범하고 착한 심성으로 기억된다는 주변 사람들의 인터뷰는 그가 왜 이런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더욱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검거후 용의자는 8월말에서 10월말까지 두 달 동안 피해자들을 살해했으며 금전적인 이유 때문이었다고 자백했습니다. 하지만 한 범죄심리학자는 그가 진짜 범행동기를 숨기고 있다면서 용의자의 비정상성을 시체성애자의 특징으로 진단하였습니다. 단지 돈 때문이라 하기에는 너무 끔직한 일을 저질렀으며 이른바 ‘사이코패스’(psychopath)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다른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달리 자신의 문제와 감정을 잘 숨기고, 평소 얌전하고 성실하다는 주위 사람들의 평가를 듣는다고 하니까요.

 

[사진: 경찰차로 호송되는 용의자]

사이코패스는 선천적인 성향일 가능성이 크다고 하니 태어날 때부터(natural-born) 용의자가 그런 인자를 가졌다면 도리어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기가 용이합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살아오면서 어떤 상처를 받았고 트라우마가 생겼다면, 혹시 그것이 이번 사건과 관계가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문득 들었습니다. 좀 더 진상이 밝혀져야 되겠지만 우리 마음속의 ‘블랙박스’는 워낙 복잡하고 미묘하니까요. 물론 어떤 이유로도 그의 잔인한 행동을 변명하거나 용납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이 사건의 전모는 실종된 여성의 오빠가 동생을 찾는 트윗을 띠우면서 드러났습니다. 그녀가 트위터에 “함께 죽어줄 사람을 구한다”는 메시지를 띄우고 그에 대해 “같이 죽자”고 답한 사람이 바로 용의자였다는 증거를 추적하면서 발견된 것입니다. 아직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다른 피해자들과의 접촉도 자살희망을 원하는 트윗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자살이 아닌 피살로 끝났지만 그들은 왜 죽음을 결심하고 행동으로 옮기려고 했을까요.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들었을까요.

살면서 받은 상처가 좌절을 낳고 그것은 다시 공격성을 불러일으키며, 밖으로 드러날 때 과격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폭력 이론의 하나입니다. 그런 행동이 타인에게는 물리적 혹은 언어적 폭력으로, 그리고 자신에게로 향해질 경우 자해나 자살로까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조금씩 양태는 달랐겠지만 동반자살을 원했던 그들 역시 자신들의 상처와 그로 인한 좌절이 한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최근에 일본 영화 ‘우행록’(愚行錄; Traces of Sin, 2016)을 보았습니다. 어린 시절 계부에게 성적 학대를 받았던 한 여성과 그녀의 오빠가 중심인물입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이겨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어렵사리 들어간 대학에서 다시 사람들로부터 모멸을 받고 좌절을 하다가 결국 참혹한 일을 벌이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오빠가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며 파멸의 길로 가는, 참으로 퍽퍽하고 우울한 영화입니다. 인간의 가장 큰 적은 인간이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며 영화는 어느 것도 해결하지 않은 채로 마무리됩니다. 현실이 그런 것처럼.

 

[사진: 영화 ‘우행록’(愚行錄) 포스터]

우리는 살면서 많은 벽에 부딪치고 크고 작은 상처를 받습니다. 진학이나 취업과 같은 중요한 인생사가 제대로 풀리지 않아 좌절할 수 있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받는 아픔도 작지 않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고 그것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삶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살아가야 합니다. 사는 게 늘 즐겁고 행복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기 때문에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거창한 삶이 아니더라도 우리 하나하나는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교토로 오면서 시집 한 권을 갖고 왔습니다. 민초들의 고단한 인생살이를 애잔하지만 따뜻하게 그려낸 시집입니다. 그 말미에 실려 있는 시론(詩論)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절망을 수락하되 절망에 투항하지 않는”. 그렇습니다. 어떤 좌절의 나락에 빠지더라도 자기 자신을 내려놓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희망’이라는 것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투항하지 않도록 힘을 주는 것은 ‘희망’입니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가장 밑에 깔려 있었다는 그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한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누군가 말했듯이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버틴 힘으로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쓰러지지 말고 이겨냅시다. 나도, 또 여러분도.

 

 

 

하종원 교수님  won@sunmo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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