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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보다 불편한 일본의 카드 생활"

교토에 온 지 석 달이 지났습니다. 낯설었던 거리가 눈에 익어가고 서툴렀던 행동들이 제법 몸에 붙었습니다. 물론 대화할 상대가 별로 없어 한국말 할 기회가 드물고, 빈약한 일본어 실력 때문에 인간관계가 제한적이다 보니 여전히 과묵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로마에 가면 로마인처럼 하라"(Do as the Romans Do)는 말처럼 나름대로 흉내를 내다보니 어설프지만 그럭저럭 '일상'으로서의 생활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극복하기 어려운 부분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문화적 차이라면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손으로 음식을 먹는 인도의 가정에 초대받는다면 숟가락이 없다고 불평하느니 그들의 생활습관을 배우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도 저도 아닌 일본식 제도에 대해서는 솔직히 납득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습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이 카드의 사용입니다. 한국에서 ‘카드의 생활화’를 실천했던 사람으로서 일본의 카드의 용처(用處)는 불만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신용(credit)을 쌓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신용카드의 발급은 은행으로부터 대번 거절당했지만,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리 쓸모가 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는 곳이 의외로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용카드의 사용을 거부하면 법적 제재를 받는다는데, 이들은 영업주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는 듯합니다. 그러기에 어떤 음식점은 문 앞에 버젓이 "우리는 현금만 받는다"고 경고성 안내를 하고 있습니다.

 

[사진 : 어느 상점의 고지문 (현금 OK, 카드 No!)]

신용카드의 신청을 퇴짜 맞은 후 대안으로 마련한 것이 예금계좌와 연동된 현금카드(cash card)였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용도가 극히 제한적입니다. 현금 인출이나 입금 등만 가능할 뿐 물건을 사거나 식당에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8%의 소비세가 붙기 때문에 계산을 하기 위해서는 대부분 동전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좀 나아지기 했지만 여러 단위(1, 5, 10, 50, 100, 500엔)의 동전을 갖고 다니며 적절히 골라 계산하기란 생각보다 만만치 않습니다. 미국 역시 세금이 별도로 붙지만 그네들의 현금카드는 구매행위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일본 생활에서 동전지갑은 필수 휴대품이 되었습니다.

 

카드의 제한된 용도는 교통비에도 이어집니다. 아시다시피 일본은 교통비가 워낙 비싼 것으로 유명합니다. 내가 사는 기숙사에서 차를 한번 갈아타고 도시샤대학까지 가는데 편도 500엔(5,000원)이 듭니다. 거리상으로 치면 천안역에서 온양온천역까지와 비슷하지만(전철비 1,350원) 교통비는 약 세 배 반 이상 비쌉니다. 이렇듯 비용이 많이 드는 이유는 교통비 자체도 비싸지만 환승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달리 신용카드나 현금카드를 후불교통카드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통카드를 별도로 구매할 경우, 버스와 지하철을 같이 사용할 수도 있지만 사용범위가 제한적입니다. 또한 관광객을 위한 1일 버스표를 판매하지만 이 역시 일상적인 사용은 아닙니다.

 

환승이 이루어지지 않는 배경에는 여러 회사가 공존하고 있는 일본의 철도산업구조가 한 몫을 합니다. 교토의 경우 대표적인 JR선 뿐만 아니라 긴테츠(近鐵)선, 케이한(京阪)선, 한큐(阪急)선 등 여러 사기업의 철도노선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철도 회사들은 각자의 노선에 맞추어 역을 세우고 동일한 지역에도 별도의 역을 운영하며 별도의 요금을 받습니다. 심지어 한 건물에 각각 두 역이 나란히 붙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 간의 환승은 불가능하고 다시 처음부터 비용을 지불해야만 합니다.

 

[사진 : 모토마치(元町)의 JR역과 한신(阪神)전차역 입구]

이방인의 눈으로 보면 구매행위를 할 때 겪는 불편함이나 교통수단의 환승에 드는 고비용의 문제를 우리처럼 카드를 통해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을 법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일본인들은 그들의 오랜 관습이나 제도에 익숙한지 별로 개의치 않은 듯 보입니다. 어찌 보면 현금의 사용이 카드로 인한 지나친 지출을 막고 규모 있는 가계생활을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개별 이용자보다 상점이나 식당, 철도회사 등 사업자의 권리와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 일본이라는 더 커다란 시스템을 운영하는데 필요하다는 정책적 판단이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쨋거나 그들 나름대로 이유와 명분이 있겠지만 그리 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순응하며 살아가는 일본인들의 모습 속에서 일본을 지탱하는 끈끈한 힘이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일본의 한계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섣부른 판단도 해봅니다. 불현듯 한국이 그리워집니다.

 

하종원 교수님  won@sunmo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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