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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와 정지용, 그리고 도시샤(同志社)

  올해가 시인 윤동주의 탄생 100주년입니다. 1917년 겨울에 태어나 해방을 몇 달 앞둔 1945년 2월, 일제의 감옥 안에서 만 스물일곱의 짧은 생을 마감한 그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를 기념하는 사업으로 한 출판사가 올 초 펴낸 시집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윤동주가 사랑한 시인, 정지용”. 다름 아닌 정지용 시집을 출간한 것입니다. 그만큼 윤동주에게 정지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우리 코기토에서도 ‘재미있게 보기’가 소개된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에서 송몽규가 전해준 정지용 시집을 받고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윤동주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실제로 윤동주는 평소 정지용 시집을 곁에 두고 읽으며 습작의 교본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런 연유로 문학평론가 유종호 교수는 윤동주의 초기 시에는 정지용의 어휘와 느낌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 두 사람은 직접 만난 적은 없는 듯 합니다. 영화 <동주>에서 정지용으로부터 일본 유학을 권유받는 장면이 나오지만, 이는 영화적 설정일 뿐 그에 대한 문헌적 증거는 없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얼굴을 마주하지는 못했을지 몰라도 두 사람은 끈끈한 인연으로 이어집니다. 윤동주가 비통하게 세상을 떠난 지 만 2년이 흐른 1947년 2월, 정지용은 “육첩방은 남의 나라 /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라는 ‘쉽게 쓰여진 시’(1942. 6)를 <경향신문>에 추천하여 윤동주를 세상에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그 후 1948년 1월 유고 31편을 모아 공식적으로 처음 출간된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서문을 써 준 이도 정지용입니다.

 

[사진 : 영화 ‘동주’의 정지용(문성근 분)과 윤동주(강하늘 분)의 대화 장면] (* 배우 문성근의 아버지인 고 문익환 목사는 윤동주와 죽마고우 동향 친구였습니다)

  “절제된 언어와 우리말을 감각적으로 활용한 모더니즘의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는 정지용은, 하지만 오랫동안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시인입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납북을 당한 후 납북과 월북을 동의어로 간주했던 정치권력은 그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허용치 않았습니다. 이념을 통치의 도구로 활용하며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공산주의자의 꼬리표를 붙였던 엄혹한 시대의 폭거였습니다. 그 후 1988년 해금될 때까지 근 40년 동안 그는 있지만 없는 사람으로 존재 아니 부재했습니다.

 

  그 두 시인이 지금은 도시샤대학 교정 한 편에 자리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정지용이 1924년 영문과에 입학하고, 그로부터 한참 뒤인 1942년 가을 윤동주가 다시 같은 과로 들어온 그 공간입니다. 그들을 아끼는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 시비가 세워졌습니다. 1995년 사후 50년을 추모하여 먼저 세워진 윤동주의 ‘서시’가 왼쪽에, 10년 후인 2005년 세워진 정지용의 ‘압천’이 오른쪽에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사진 : 도시샤대학 교정의 두 시인의 시비]

  알다시피 ‘서시’(序詩)는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랬던” 윤동주의 고뇌와 번민이 담겨진 대표작입니다. “압천 십릿벌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로 시작되는 정지용의 ‘압천’(鴨川)은 도시샤대학에서 버스로 두어 정거장 거리에 있는 ‘카모강’(カモかわ)의 한자명입니다. 교토의 중심을 남북으로 흐르는 카모강은 규모는 작지만 교토인의 휴식처로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백성으로 정지용은 어떤 마음으로 카모강변을 거닐었을까요. 흠모했던 정지용의 숨결이 남아 있는 도시샤의 교정을 걸으면서 윤동주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들을 따라 카모강변을 거닐면서, 또 도시샤의 교정을 걸으면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습니다.

 

  윤동주는 옥사 이후 그가 태어난 북간도 용정으로 옮겨 묻혔으며, 정지용은 납북 중에 미군의 공습에 의해 죽었다고도 하니 시신이나 제대로 거두었을까 싶습니다. 비극적으로 마친 그들의 삶은 일본 제국주의의 야욕과 남북 이념 분쟁의 희생에 다름 아닙니다. 비록 육신은 다른 곳에 있을지라도 또 고국의 땅은 아니더라도 시간을 넘어 함께 공유했던 이 자리에서라도 두 시인이 마음 놓고 시와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점점 가을이 깊어지고 짙어집니다. 이 아름다운 계절, 낙엽 떨어지는 벤치라도 앉아 그들의 시를 읽으면서 정취를 느껴보면 어떨런지요. 윤동주가 그토록 닮고 싶어 했던, 쉬운 언어로 진솔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한 정지용의 시 한 편을 보냅니다. “얼굴 하나야 / 손바닥 둘로 / 폭 가리지만 // 보고픈 마음 / 호수만 하니 / 눈 감을밖에”(‘호수’ 전문). 다들 즐감하시고 풍성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이 가을을 만끽하기를 바랍니다.

 

추신: “그런데, 말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1917년생입니다. 1942년 도쿄의 일본육사에 편입하여 1944년에 졸업, 일본 육군소위로 임관하였으니 두 사람 모두 같은 시기에 일본에 와있던 셈입니다. 하지만 해방 후 변신하여 승승장구하며 절대 권력을 누렸던 박정희와, 해방을 채 맞지 못하고 투옥되어 짧은 삶을 끝내야 했던 윤동주. 그 두 사람의 극명히 대비되는 인생역정과, 태어난 지 100년을 맞이하여 그들에 대한 사후의 평가가 다시 또 대비될 수밖에 없음은 삶의 아이러니요, 역사의 준엄한 가르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하종원 교수님  won@sunmo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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