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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망가와 아니메의 국제성”

일본이 만화의 왕국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만화를 의미하는 망가(マンガ)나 애니메이션을 지칭하는 아니메(アニメ)라는 그들의 단어가 전 세계에 통용되는 고유명사가 될 정도이니까요. 다소 도식적인 구도 아래 영웅 이야기로 도배되는 미국 만화의 대중적 흡인력과, ‘제9의 예술’에 걸맞게 종종 현학적으로 흐르는 프랑스 만화의 철학적 풍취를 적절히 겸비한 일본 만화는 ‘다룰 수 없는 소재가 없을’ 만큼 다양하고 폭넓은 스토리텔링으로 국제적으로 탄탄한 마니아층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일본 만화산업의 거대함은 전 세계에서 견줄 데가 없다”는 미국의 한 미디어 학자의 말처럼 말입니다.

 

그런 일본만화의 현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최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첫 번째는 교토의 새로운 명소가 된 교토국제만화박물관(Kyoto International Manga Museum)입니다. 2006년 옛 초등학교 건물을 개조하여 만든 이 박물관을 찾았을 당시 야마기시 료코(山岸凉子)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일본 소녀만화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대표작가인 그녀의 작품을 시기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원화를 전시하는 등 여느 화가의 전시회에 못지않은 풍부한 내용으로 관객을 끌어들였습니다. 또한 펜을 들고 있는 100여명의 만화가의 손을 석고모형으로 똑같이 모사한 ‘만화가의 손’이라는 전시회 역시 만화가들의 위상과 그들에 대한 일본인의 애정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박물관의 진짜 핵심은 일본 만화의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을만큼 수많은 만화책과 잡지들을 벽에 가득 채워 놓고, 그것을 관람객들이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데 있습니다. 곳곳에 마련된 공간에서 남녀노소를 막론한 많은 이들이 만화에 몰두해 있는 모습은 박제된 박물관이 아닌 마치 커다란 만화방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었습니다. 그것은 일본인들의 삶에서 만화가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었습니다.

 

[사진 : 국제만화박물관에서 만화 삼매경에 빠져 있는 관람객들]

또 다른 기회는 9월 16일~17일 이틀간 열린 교토국제만화·애니메이션축제(International Manga·Anime Fair)입니다. 거개의 이런 축제들이 그렇듯이 코스프레, 토크쇼, 세미나, 영화시사회 등등 구색을 갖추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부천국제만화축제’가 국내외 작가와 작품을 망라하여 꾸미는 것과는 달리 ‘국제’라는 접두사만 붙었을 뿐 1층 및 2층의 부스에는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만화출판사와 애니메이션 방송사 혹은 영화사들이 자신들의 상품을 소개하고 홍보하는 판촉장이라는 인상이 더 들었습니다. 더욱이 그들 만화의 주인공들과 관련된 배지, 피규어, 손수건 등등 수많은 캐릭터상품을 열광적으로 구매하는 수많은 관람객들의 열기 속에서 이방인 같은 소외감이 들고 나중엔 다소 지루하기 까지 했습니다.

 

조금은 실망감을 안고 돌아서는 순간 무엇인가가 시선을 끌었습니다. 전시공간의 한 쪽에 마련된 ‘2018년판 일본 아니메의 성지(聖地) 88개’가 그것입니다. 알고 보니 전 세계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무대가 된 지역과 명소들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전 세계 125개국에 배급을 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올해 적지 않은 인기를 얻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君の名は)의 경우, 남 주인공 타키가 사는 도쿄시의 신주쿠와, 여주인공 미츠하의 고향인 기후현 히다시(이토모리마을)가 소개되었습니다. 그 두 공간의 극명한 대비(대도시와 시골, 현대와 전통, 첨단과학과 토속신앙)가 이야기의 전개에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이렇듯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작품의 출발점으로 공간적 무대를 중요하게 다루고 그 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매우 실사적(實寫的)으로 그려내며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TV 드라마 ‘겨울연가’의 무대가 되었던 남이섬이나 용평 등을 외국인들을 유치하는 관광 상품으로 홍보한 것처럼 말입니다.

 

[사진 : 2018년판 일본 만화의 성지(聖地) 88]

그제야 왜 이들이 자신들만의 만화나 애니메이션만을 모아 놓고도 ‘국제’(International)라는 용어를 당당하게 붙였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그것은 전 세계의 여러 작품들을 유치해서가 아니라 일본 만화가 갖는 전 지구적 소구력 자체가 ‘국제적’이라는, 다소 오만함이 뭍어있는 자부심의 표현이었습니다. 교토국제만화박물관 역시 외국의 출판만화보다는 전 세계에서 번역된 그들의 만화에 초점을 맞추어 전시를 하고 있는데, ‘국제’라는 용어를 붙인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싶은 ‘합리적’ 의심도 들었습니다.

 

하청산업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붙었지만 한국도 둘째가면 서러워할 만큼 만화산업이 번창했던 나라입니다. 더욱이 최근 우리의 웹툰은 문화적 파급력뿐만 아니라 산업적 가치까지 담보하고 있는 장래 유망한 문화상품입니다. 그러기에 전시회장을 나오면서 ‘우리도 너네 못지않아’ 라는 오기가 은근히 발동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구석에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일본만화의 그 알량한 국제적 위상 때문이 아니라 두 곳에서 확인한 일본인의 만화 사랑에 대한 부러움 때문이었습니다. 지하철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나이 지긋한 중년 남자가 거리낌 없이 만화잡지를 읽고 있는 모습이 왜 우리나라에서는 낯설은 장면이 될까 라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그리 편치 않았던 긴 하루였습니다. *

 

하종원 교수님  won@sunmo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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