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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당한 사람들(The Beguiled, 2017)>
[매혹당한 사람들 포스터]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숲길, 어린 소녀의 가느다란 허밍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어둑하게 보일만큼 우거지고 안개가 가득 찬 숲길을 걷는 소녀의 모습에 이윽고 화면을 꽉 채우는 영화의 제목이 이름만큼 퍽 매혹적인 오프닝이다.

 

1864년, 남북전쟁으로 사람들이 떠난 인적 드문 마을에 7명의 여자들만이 남아 살고 있는 기숙학교가 있다. 영화의 시작에서 허밍하며 버섯을 따러 다니던 소녀 에이미 앞에 심각한 다리 부상으로 죽음 직전의 상태인 군인 ‘존’이 나타난다. 에이미는 존을 데리고 자신이 지내는 기숙학교로 데려간다. 기숙학교에서는 북군인 존을 고발하려 하지만 심각한 다리 부상으로 정신을 잃은 존을, 크리스찬으로서 사람이 죽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숨겨주고 치료해주게 된다. 이때부터 존과 일곱 여자들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미스마나, 에드위나, 알리시아, 존]

기숙학교의 원장인 ‘미스 마사’와 ‘에드위나’, ‘알리시아’ 이 세 명의 여자를 중심으로 일곱 여자들과 존 사이에 욕망이 오고간다. 미스 마사와 에드위나, 알리시아 각자가 존과 매혹이라는 감정을 쌓는 동안 남은 어린 소녀들이 존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귀엽게까지 느껴진다. ‘미스 마사’는 적군인 존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아무도 함부로 존이 지내는 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지만, 틈날 때 마다 서로를 속이며 드나드는 모습에서 어떤 위화감이 느껴졌다. 일곱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 특이한 인물 구도 속에서 여느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노골적이고 빠른 전개가 약간의 당황을 준다. 상황을 경계하며 비교적 안전하게 지내던 여자들이 존의 등장 하나로 같은 방향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간다. 이성의 등장으로 각자의 마음이 모두 같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에 위화감을 느끼다가도 전시라는 특별한 상황이 그녀들을 이렇게 몰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존과의 만찬을 위해 사용하지 않던 장신구를 착용하고 코르셋을 좀 더 조이는 등 더 매혹적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우아하게 행동하는 그들이 존을 이유로 서로를 질투하고 여자들만이 눈치 챌 수 있게끔 장치된 디테일한 포장을 콕 집어 드러낸다. 존은 그런 그들을 지켜보며 매너 있게 행동하지만 관객들은 그의 마음이 여기저기로 분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존은 그녀들의 관심을 기꺼이 환영하고 즐기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관객으로서 극중의 존이 굉장히 매혹적이고 듣기 좋은 언사를 펼치는 것을 보면서 문득 이 남자가 어떤 속내를 숨기고 있지는 않을까하는 불안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녀들의 감정이 점점 고조되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스며든다. 긴장감이 극으로 치달았을 때, 예기치 않은 사고로 그녀들에 대한 존의 감정이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흐른다. 그녀들이 자신을 도구처럼 이용한다는 생각에 빠져 포악한 모습을 보이며 협박하기도, 애원하기도 한다. 매혹하는 주체였던 존이 거꾸로 본능에 매혹 당함으로써 그녀들에게 배신감을 주고 파멸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새 위협이 되어 버린 존을 향해 그녀들은 냉정한 결단을 내린다. 존의 본능이 초래한 사태를 그녀들의 본능으로 끝낸 것이다.

 

매혹당한 사람들의 상영시간은 90분이다. 엔딩크레딧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짧은 상영 시간이 영화를 덜 매혹적이게 한 것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다르게 생각되었다. 함축적인 내용과 느린 전개로 인한 급한 종결, 열린 결말 등에 익숙해진 나에게 대놓고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는 인물들과 확실한 전개가, 오랜만에 흔히 말하는 고구마를 먹은 기분이 들지 않게 해주는 영화였다. 옛날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어두운 영상과 왠지 촌스러울 정도로 솔직한 대사들이 그들 사이에 얽힌 스토리보다 더 내 마음을 끌었다. 그들의 배경과 관계에 숨겨진 이야기를 궁금하게 하지 않고, 긴 여운을 남기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들이 뿜고자 하는 관능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나를 매혹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매혹을 감상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김지나  jn22@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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