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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폭염과 고시엔(甲子園)”

9월이 되면서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며 초가을 냄새를 풍기고 있습니다. 아직도 낮에는 30도 전후의 열기가 남아 있지만, 지금만 같아도 고맙다 할 정도로 8월의 교토는 견디기 힘든 후덥지근한 폭염이 밤낮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 날씨만큼 드센 열기로 일본열도를 달군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한창 무더운 8월, 보름동안 열린 일명 '고시엔'(甲子園)이라는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가 그것입니다.

 

▲고시엔 결승전 경기 사진

사실 ‘고시엔’은 교토에서도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오사카 부근의 효고현에 있는 운동장 이름입니다. 1924년 갑자년(甲子年)에 완공되었다고 하여 그리 붙여진 이 야구장은 9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야구의 성지(聖地)’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본선이 열리는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가 올해로 99회를 맞이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전국 단위의 고교야구 대회가 여럿 있기에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점 말고는 새삼스러운 것이 없을 법도 합니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몇가지 점들이 눈에 띱니다.

 

먼저 ‘야구’, 특히 청소년 야구에 대한 그들의 태도입니다. 저명한 고교 야구감독인 나카무라 쥰지는 ‘야구의 도가 곧 인간의 도’(球道卽人道)라는 명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이 말은, 야구는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인간교육을 위한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지론입니다. 일본의 고등학교 야구부가 4,000여개에 달한 것도 그러한 인식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들 중 제대로 된 야구팀이라고 할 만한 것은 1,000개교 남짓이라고 하니 나머지 팀들은 동호회 수준 정도 일 것입니다. 단지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참여하여 경쟁의 참 의미를 배우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청소년 야구의 첫 번째 존재 이유라 하겠습니다.

 

고시엔 야구의 경기는 공영방송인 NHK의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 일본 전역으로 방송되며, 수많은 관중이 30도가 훌쩍 넘는 폭염의 경기장으로 운집합니다. 결승전이 열리게 되면 해당 팀의 고장에서는 TV를 보거나 라디오를 듣기 위해 일손을 놓거나 교통이 멈춰버리는 일도 생길 정도라고 합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출전방식에 있습니다. 올해는 총 3,839개교가 출전하여 초여름부터 예선을 치러 최종 49개교가 본선에 진출했는데, 이는 일본의 47개 행정구역에서 각 1팀(인구가 많은 도쿄와 면적이 넓은 홋카이도는 2개 팀)이 선발되기 때문입니다. 수십여 개의 학교들 중 한 팀을 선발하는 지역예선은 학생이나 동문들뿐만 아니라 그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의 관심사가 되고, 최종 선발된 팀은 어느 학교이냐 와 상관없이 그 지역주민들의 기대와 성원을 받습니다. 여름 내내 이 야구선수권대회를 통해 지역은 지역대로 뭉치고 또 일본 전국은 다시 하나가 되는 전 국민적 행사를 치르는 것입니다.

 

이번 고시엔 야구를 텔레비전 중계로 보면서 일본인들에게 이 대회는 일종의 ‘의식’(儀式, ritual)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추석이 되면, 고향을 찾아 부모와 친지를 만나고 조상에게 예를 갖추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고 자신이 속한 사회의 규범과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일종의 ‘사회화’를 자연스럽게 겪게 됩니다. 그 한 켠에 일본의 오랜 관습인 전체주의적 사고의 결이 얼핏 느껴졌다면 지나치게 불온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추신: 고시엔 대회가 끝나고 일주일 남짓 후인 9월 초에 캐나다에서 제28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가 열렸습니다. 2년 전 27회 대회를 유치한 일본은 미국에 패배하여 준우승의 아쉬움을 가졌기에(한국은 일본에게 0-12로 콜드패), 올해 고시엔에서 6홈런, 17타점, 38루타를 기록하며 종전의 타자 기록을 모두 갱신한 나카무라와, 고교 통산 100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하며 일본의 ‘베이브 루스’라 불리는 키요미야 등을 내세워 우승의 출사표를 던지며 분위기를 한참 띄웠습니다. 이번에도 결승진출라운드 마지막 경기를 우리와 치렀는데 결과는 한국의 6-4 승리로 꿈이 무산되었습니다. 비록 결승에서 우리가 미국에 패배하여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2년 전의 굴욕을 보기 좋게 갚아준 셈입니다. 일본에서 이 소식을 접하기에 더욱 뿌듯한 마음이 들면서도, 70개 남짓에 불과한 한국 고교야구팀과 4,000여개에 달하는 일본 고교야구팀을 비교하며 우리의 승리를 자축만 하기에는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하종원 교수님  won@sunmo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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