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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통신(京都通信)을 시작하며”

처음으로 비행기를 탄 것은 서른 즈음입니다. 당시 다니던 연구소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타이베이와 싱가포르를 혼자 출장 가야 했습니다. 지금보다 어렵다곤 해도 그 나이에 비행기를 탄 것은 그리 빠르다 할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남들 다 간다는 그 흔하디흔한 제주도 신혼여행은 아직 미혼이던 탓에 시도도 못했으니까요. 기기의 힘을 빌리기는 했지만 처음으로 하늘을 날았을 때의 짜릿한 흥분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물리적 공간을 이동하는 여러 교통수단 중에 비행기는 좀 색다른 듯합니다. 자동차나 기차가 2차원 평면에서 이동하는 것이라면, 비행기는 3차원 공간으로 확대됩니다. 마치 땅위에서 허덕이는 지렁이와, 위아래를 오가며 허공을 나는 나비와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땅을 박차고 하늘로 올라가는 비행기 안에서 창밖으로 점점 작아지는 물상들을 보며 입체라는 개념을 몸으로 느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하늘의 비행이 끝나고 내린 땅은 그야말로 낯설고 물설고 길고 말설은 곳이었습니다. 내가 아는 사람도 없었고 나를 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보낸 며칠간의 시간은 그동안 갖지 못했던 매우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껏 나를 둘러싼 것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2차원적 평면에 머물렀던 존재가 3차원적 공간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한 것처럼. 하늘에서 세상을 새롭게 보듯, 땅위에서만 보았던 모습들을 달리 보도록 해주었습니다. 어디가 더 좋고 나쁘다는 비교의 평가가 아니라 우물 안 개구리의 시선을 벗어나 넓은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 후 외국에서 좀 더 오랜 시간을 지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여행이 시간에 쫓겨 한 곳을 눈에 담기도 전에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하는 것이라면, 생활은 차분하게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국외자의 입장에서 유물과 문화재를 주로 감상하는 것이 여행이라면, 내부자의 정서로 사람과 삶을 체험하는 것이 생활일 것입니다. 전자가 과거의 흔적을 찾는 것이라면, 후자는 현재를 느끼는 것이라고도 하겠죠.

이번 2학기에 그런 기회를 다시 갖게 되었습니다. 교토(京都)에 있는 도시샤(同志社) 대학에서 한 학기 연구년을 보냅니다. 사실 외국의 문화와 관습을 제대로 느끼기에 6개월이라는 기간은 턱 없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다음 행선지로 떠나기 위해 급하게 짐을 챙기고 스치듯 지나가는 것보다는 좀 더 긴 호흡으로 사물들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교토의 랜드마크 교토타워
세계유산의 하나인 청수사(淸水寺)

일본의 여러 지역 중에서 교토는 가장 일본다운 공간입니다. 천년의 고도(古都)로서 10여 개가 넘는 세계유산을 비롯하여 2,000여 개의 사찰과 신사 등이 남아 있는 과거와, 경제·문화의 중심지이자 국제적인 관광도시로 발전하고 있는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곳입니다. 특히 많은 대학과 박물관, 미술관이 있는 학술·문화 도시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교토통신’(京都通信)이란 이름으로 간간이 소식을 보낼까 합니다.

일찍이 1952년에 김소운(金素雲) 선생은 서간체 형식의 <목근통신>(木槿通信; ‘목근은 무궁화)을 펴냈습니다. ‘일본에 보내는 편지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 이 수필집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을 비하하는 일본인의 멸시에 대한 민족적 항의를 담고 있습니다. 외람되게 그 책을 흉내 내통신이라는 이름을 빌려 썼지만 34년 간 일본을 경험했던 그 분의 비평서에 비할 수는 당연히 없습니다. 그보다는 통신사’(通信社)의 주재원이 느끼는 개인적인 감상문 정도로 생각해주십시오.

이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됩니다. 늘 그렇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하는 지점입니다. 이곳의 나도 한국의 여러분도 그럴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한 학기가 끝날 무렵, 우리 모두 즐겁게 보냈다고 자평(自評)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들 늘 건강하십시오. (하종원)

 

하종원 교수님  won@sunmo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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